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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적 재산권은 국제경쟁력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08.01.28 00:00 조회수 2334 추천 0 스크랩 0
21세기 지적 재산권은 국제경쟁력 [뉴스메이커 760호] 2008 01/29 럭키국제법률사무소 소장 김덕태 법학박사, 변리사로 46년 외길 김덕태 소장은 변리사에 대해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산업 발전 및 경쟁을 결정짓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라 설명했다. 세계는 지금 치열한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 경제 발전의 핵심이기에 새 정부에서도 영상, 게임, 음악, 방송 등의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 대한민국을 세계 5대 문화산업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독자적인 디자인·브랜드를 개발하지 않고서는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또 개발한 기술을 권리화해 타인이 모방하지 못하도록 지적재산권으로 확보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신기술이나 독창적인 디자인, 혹은 오랜 기간 사용해온 상표라 하더라도 특허청에 출원하여 등록해놓지 않으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타인의 모방이나 도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특허를 선점한 모방업체나 개인으로부터 원 저작자가 권리행사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2005년 11월 중국 내 해외저작권 관련 첫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한국의 대표 캐릭터 ‘마시마로(엽기토끼)’의 경우도 중국 기업이 마시마로의 상표권자인 ‘CLKO 엔터테인먼트’보다 1년 먼저 중국 상표국에 상표를 출원, 전국적인 가맹점 사업을 진행했던 것이 소송의 원인이었다. 지적재산권 인식에 대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기에 해외저작권 역시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의 태도가 바뀐 것은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세계적인 큰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고객에 최선” 위해 끊임없이 공부 “오늘날 인터넷 이용의 대중화와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 WTO 및 FTA 체제 진입은 개인과 기업의 지적재산보호에 있어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21세기의 지식재산권은 더 이상 자국(自國)만의 보호가 무의미하며, 글로벌화를 통해 선진국과 경쟁해 나가야 합니다.” 부산지역 대표 변리사로 46년 외길인생을 걸어온 럭키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김덕태 소장은 첫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올해로 81세가 된 김덕태 소장은 고령이지만 자신을 나이에 얽매려 하지 않는다. 1962년 변리사로 첫발을 내딛은 이후 46년간 한결같이 개인이나 중소기업의 발명·아이디어를 넓고 강한 권리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학에서 ‘사회사상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왔던 그가 교육이 아닌 경제적 측면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변리사로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사연은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처음 변리사를 꿈꿨을 당시에는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했을 때, 나를 발전시킬 수 있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며 미래를 밝혀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학교수’라는 직위를 가졌지만, 더 큰 꿈을 향한 끝없는 열망으로 젊은 시절에 특허청을 자주 드나들면서 매력을 느꼈던 ‘변리사’라는 직업에 도전하고자 그는 가족들에게 잠시 이별을 고하고는 부산 범어사 청년암에 들어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하루에 3시간만 자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전깃불이 없어 선박용 전기를 이용해 밤을 새웠던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웃음).” 그는 예상문제를 정하고 그 예상문제에 대한 답안을 시험시간에 맞게 정리한, 사전 두께만한 노트를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는 노력 끝에 시험을 준비한 지 1년 만에 변리사시험 최종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년 만에 합격했지만 그 과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특히 3차시험을 준비하던 중 맹장이 터지기까지 했지만 변리사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3차시험에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시험을 치렀던 김덕태 소장. 그의 굳은 의지에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어 보였다. 각 부서마다 전문인력 대거 포진 럭키국제특허법률사무소는 2004년 1월에 새롭게 명칭을 변경, 더 나은 특허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변리사가 된 김 소장은 전국 최고의 사건 건수를 몇 년 동안 유지했던 바쁜 나날 속에도 더 나은 변리사가 되기 위해 미국 George Mason University로 유학을 떠났고,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과 동아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며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학문을 닦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는 많은 땀이 필요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신념하에 아직도 저는 한 사건을 맡으면,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의미로 책상부터 정리하고 사건의 판례를 찾아 타당성 있는 변론을 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는 1973년 ‘김덕태 국제특허법률사무소’를 설립해, ‘이태리 타올’의 특허등록을 성공시키는 등 많은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얻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왔고, 2004년 1월 1일에는 현재의 ‘럭키국제특허법률사무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사무소 내 업무를 국제부와 국내부로 분리해 국내 출원 및 등록은 물론이고 해외 출원 및 등록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발명가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남 김해 출생으로 김해농고를 졸업한 김덕태 소장은 35년 가까이 사무소를 이끌어온 비결에 대해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 공부와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3일 밤낮을 하루와 같이 연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굳은 의지와 신념이 부산에서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가진,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특허법률사무소로 각광받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전 세계의 기업들은 치열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허는 시장을 확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의 기반이며 경쟁력입니다. 특허전쟁에서 이기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우리를 추격하고 있는 중국, 동남아 국가 등의 틈바구니에서 기업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사의 특허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특허, 상표 및 의장, 법률 부서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서마다 오랜 경험을 지닌 전문 인력들이 국내 및 해외 지적재산권 분야의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신속·정확성을 목표로 높은 성취도를 보이고 있는 럭키국제특허법률사무소. 그곳에서 고객 만족을 실현하고 있는 김덕태 소장은 오랜 경험과 폭넓은 지식, 최신 기술 정보를 효율적으로 조화해 국내 및 국제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에서 고객의 원하는 바를 최대한 만족시켜 고객 감동을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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